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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헤르메스의 기둥 중 -신-

 "불가지의 영역은 신의 영역이다. 위 디오니시우스는 신의 본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신은 너무나 선하고 위대하여 우리의 불완전한 감각기관으로는 그 본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철학자가 신에 대해서 완전히 알았다고 떠든다면 그는 '완전한' 사기꾼일 것이다. 오히려 '나는 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이다. 신의 본질은 피조물 속에 현현해 있다. 모든 피조물의 신의 본질로부터 유출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피조물을 통해서 어느 정도 신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불와넞ㄴ한 인간으로서 신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에게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한가지로 봄으로써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신은 무한하신 분이다. 그분에게는 한계란 없다. 그럼 이 무한하신 신을 우리 인간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은 서로 모순되는 것의 성질들을 일치시킴으로써 무한대의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은 곧 신을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그는 플로티누스의 향기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준다. 만물은 신으로부터 나와 신에게로 돌아간다. 신성은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우리 인간은 신의 유출물인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신으로부터 나온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명상과 황홀한 결합을 통해 신을 체험할 수 있다. 즉,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무한대의 경험을 통해 신의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피조물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해부하며 실험해보아도 여러분들은 피조물의 본체를 영원히, 그리고 확실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문이란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독일의 위대한 학자 아그리파 선생께서 하신 말씀처럼."

 

 "나의 눈에 비친 피조물의 형상들과 색, 질료들은 모두 허무만을 남기는, 망할 것들이다. 누가 피조물에 대해서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쿠자누스는 우리의 유한적인 경험으로는 신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신은 너무나 크고 위대해서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을 초월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을 알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는 신을 알 수 없다'고 말할 때에만 신을 알게 된다. 곧 '우리는 신을 알 수 없다'라는 언술 자체가 이미 '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라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그는 '무지를 통한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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