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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짧은글

회의주의

3. 회의주의 (Skepticism)

오늘날의 회의주의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신념에 대한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많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좌우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의 기원을 보면, 회의주의는 좀 극단적이었다.
피론(Pyrrho of Elis, BC 365-275)은 회의주의 학교의 창설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도를 여행했고 나체 고행자(gymnosophist)들과 함께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개념을 인도에서 가지고 돌아왔다.
감각은 쉽게 속임을 당하고, 이성은 너무 쉽게 우리의 욕망을 따른다.

만약 인간이 어느 것도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미루고,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논쟁을 중지하고,
삶에서 소박한 평화와 평안함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평안함을 가리켜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하였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기에 충분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하자.
태양은 내일 떠오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형세는 좋아서 해는 떠오를 것이고, 
그러한 것에 대해 걱정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지지할 체계가 없다면,
그저 아무 것이나 당신이 사는 세상에 널리 퍼진 체계를 택하라.
피론은 자신이 믿는 神이 어떤 다른 神들보다 더 존재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분명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거나, 
혹은 神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그는 엘리스의 神들을 숭배하며 삶을 살았다.
비록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하더라도 회의론자가 편의상 용인하는 것들은 많이 있다.

언뜻 보면 이 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애니라는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론의 논증을 사용한다면, 노예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흑인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예로써의 그들의 삶의 역할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들은 계급제도가 있는 시스템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따라서 계급이 낮은 구성원들의 그룹은 일반적으로 부당한 억압을 경험하며
일부 극단적인 경우에는 인간성을 상실하게되고 짐승처럼 될 수도 있다.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피론이 주장한 것처럼 낙담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논의와 토론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는 개개인들이 교양 있는 방식으로 개인적인 가치와 믿음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자유롭고 정중하게 교환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아타락시아를 얻을 목적으로 이러한 교환을 희생한다면,
우리는 또한 꾸밈이 없는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희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성찰--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후에 플라톤의 아카데미 학원에는 회의주의자들이 많아졌다.
그중 카르네아데스(Carneades of Cyrene, BC 214-129)는
날이면 날마다 계속해서 쟁점의 한 측면만을 論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에 대한 척도는 절대적으로 없다.
왜냐하면 이성, 감각, 사고 혹은 존재할지도 모르는 다른 어떤 것도 
모두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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